Dialogues
동아시아출판인의 3 세대
- 린 린덴〔林載爵〕(연경출판사〔聯經出版社〕 발행인・편집장)
도쿄, 항주, 서울, 홍콩에서 개최된 4회의 회의를 거쳐 오늘 대만의 남원(新竹縣)에서 열린 5회째의 회의에서는 젊은 세대의 편집자들도 참가하여, 3 세대에 걸친 동아시아 출판인들이 함께 모이게 된 매우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3 세대, 5개 지역, 70여 년의 세월, 그 뒤안에는 복잡하고 서로가 뒤엉킨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계신 출판인 여러분들은 그러한 역사의 기록자, 그리고 편집자이며 출판인으로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직시해 온 깊은 감회와 각자의 체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제1세대의 출판인은 전쟁과 동란을 경험하였고, 전후에는 또한 역사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역사적 기억은 그들이 출판인이 될 수 있었던 정신적 기초가 되어 주었습니다. 오츠카 노부카즈 선생님, 가토 케이지 선생님, 류사와 타케시 선생님, 동수옥 선생님은 특히 출판계에서 성장해 오신 경험들을 갖고 계십니다. 역사란 출판인이 된 이상 피해갈수 없는 그물과 같은 것이고, 그것은 우리들의 영혼이나 사상 위에 덧씌워져, 우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분들이 ‘동아시아출판인회의’를 발기하게 된 동기가 이러한 배경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1세대의 출판인은, 전후의 문화재건활동에 참가하였고, 그러한 배경이 그들에게 장대한 출판계획을 구상하게 하였으며, 왕성한 도전정신을 키웠고, 대규모의 출판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오츠카 선생님은 1963년부터 2003년까지 이와나미서점에 40년간이나 봉직했고, 편집자에서 사장이 되어 이와나미서점을 크게 성장시킨 주요인물입니다. 우리들은 젊었을 때부터 이와나미서점의 출판물을 평가하고 부러워하였으며, 출판계의 별이라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오츠카 선생님께서 이와나미서점에서 최초로 하신 일은 잡지 『사상』의 편집이었습니다. 저도 2006년에 대만에서 동명의 잡지 『사상』을 창간하였는데, 이것도 이와나미서점의 『사상』으로부터 감화를 받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토 선생님은 미스즈쇼보에서 30여 년동안 편집자 생활을 하시던 가운데, 전 58권에 이르는『현대사자료』의 기획과 편집에 종사하였습니다. 이 시리즈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즉 일본의 현대사에서 가장 문제가 많았던 시기의 자료를 집성하여, 국가적인 출판프로젝트의 성격을 지닌 대규모의 출판사업을, 일개 민간출판사가 기획•완성하였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였습니다.
류사와 선생님이 헤이본샤 시절에 관계하였던 『동양문고』도 매우 의의가 있는 거대한 출판사업입니다. 44년간 750점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일본, 중국, 한국의 문학, 역사, 사상, 종교, 예술 등에 관한 고전 명저를 모아, 번역하고 교정하고 주석을 달았는데, 이것은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서 3국의 명저를 최대 규모로 집대성한 것입니다.
제1세대의 출판인들이 활동하였던 시대는 인문서출판의 황금시대이기도 하였습니다. 가토 선생님은 그 시대의 일본의 인문서출판의 특징에 대해, 학술적 가치가 상당히 높은 인문서가 일반서를 출판하는 민간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의 서구에서는 대학의 출판사에서나 출판함직한 도서라도, 일본에서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교양에 대해 경외와 함께 갈망하는 마음을 가진 많은 독자들이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와나미서점의 『강좌철학』의 판매부수가 10만부에나 이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제2세대의 출판인들은 전후에 나타난 정치세력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대만, 중국대륙에서 직면한 사태는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 정치적 압박을 받은 사실만큼은 공통적입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대만의 청년들은 점차적으로 민주적인 저항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중국대륙은 문화대혁명의 재난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제1세대가 역사의 무거운 짐을 지고 것이라면, 제2세대는 정치의 고압적인 통치에 대항하였던 것입니다. 고세현 선생님은 1979년부터 1981년 사이에 민주화운동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2번이나 체포•투옥되었고, 김언호 선생님은 1974년부터 1975년 사이에 언론자유운동에 참가하여 근무하고 있던 신문사로부터 해고당하였습니다.
한국정부는 1970년대에 대학교수, 교사, 기자, 학생 등 지식층을 대규모로 체포하였는데, 체포•해고된 지식층 중에는 출판업으로 전향한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도서출판을 통해 저항운동을 지지하였고, 또한 그들이 출판한 민주적 이론에 관한 서적들은 청년들의 사상을 계몽하여, 민주화운동을 위한 사상적 무기를 제공함과 동시에, 한국의 근대출판의 신국면을 열었습니다. 한국의 근대출판은 이와 같은 환경에서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라디오나 신문 등의 미디어가 정부의 통제에 굴복하여 비판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도서는 이들을 대신하여 가장 유효한 비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김언호 선생님은 한국에서는 1980년대가 책과 독서의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정부는 금서나 출판인과 작가의 체포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청년독자들은 독서를 통해 저항운동을 지속적으로 조직하고 전개해 갔던 것입니다. 동시에 한국인은 출판과 독서를 통해 민주와 통일의 문제를 이해하였고, 사회적 운동을 추진하였습니다. 이것은 강력하고 유효한 조건을 제공하고, 개혁을 촉진시켜, 한 나라의 열정을 불러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책뿐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만도 강권통치 하에서 금서와 작가의 체포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어났었고, 저항운동도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우리들은 출판인으로서 반대세력들에게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작가가 현실을 비판하는 작품을 널리 퍼뜨렸으며, 서양의 민주적 이론과 현대사조를 번역, 소개하여, 저항운동을 위한 사상적인 자원을 제공하였습니다. 이 무렵에는 지식인, 출판인, 작가가 공통의 목표를 위해 굳건히 결속되어 있던 시대로서, 대만 출판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의의가 있는 시대입니다.
한국과 대만의 현대출판사업은 모두 저항운동을 배경으로 전개된 것이며, 그 주도자는 모두 제2세대의 출판인들입니다. 이 시대를 돌이켜 보면, 제2세대의 출판인으로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출판을 해 왔던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1세대와 제2세대의 출판인은 근대출판의 기초를 닦은 후, 1990년대 말기부터 출판의 크게 변하는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는 독서방법을 바꾸고, 교육제도의 변혁은 독서의 내용을 바꾸었고, 출판종수의 대폭적인 증가는 출판의 존재 전체를 바꾸어 버려, 상업적인 이익의 경쟁이 출판의 최우선사항이 되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혹심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가토 선생님은 30여 년에 걸친 경험, 1년에 2~3권의 속도로 완성한 『현대사자료』의 출판작업을 돌아보면서, 꿈과도 같은 이 사업은,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마치 아주 먼 옛날의 꿈이야기 같다고 하십니다. 제가 발행인을 맡고 있는 연경출판사는, 1988년에 전 54권의 『錢賓四先生全集』을 출간하였는데, 이것은 전부 2400만자에 이르는 대만에서 최대규모의 개인전집 출판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위대한 학자의 전집을 편집•출판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대만에서 최후의 활판인쇄의 장인들 몇명을 현장에 남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전집이 모두 출판되고 나서 퇴직하였고, 그 후에는 대만에서 활자로 만든 책은 없어졌으며, 저는 활판시대의 종언을 목격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작가 수벤 바카츠가 쓴 『구텐베르크에 보내는 만가』(The Gutenberg Elegies)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제3세대의 출판인은 바로 이러한 큰 변혁의 시대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것은 ‘책의 죽음’이라는 악마의 주술입니다. 출판의 전도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독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도전은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심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앞서 간 두 세대의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고, 그것을 통해 겨우 이러한 신국면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형식과 방법이 달라질 뿐입니다. 출판인으로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보다 좋은 내용의 독서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전의 2 세대가 행해 온 것은 “보다 우수한 내용의 독서를 제공하는” 것이 출판인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물론 그것은 세대가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출판이 직면하고 있는 곤경은 1990년대 이후의 글로벌화의 큰 흐름이 초래한 결과의 일단이기도 합니다. 글로벌화가 초래한 것은 다시금 찾아 온 영어 패권의 확대이고, 그것은 출판의 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번 더 돌아 봅시다. 제1세대의 출판인들은 역사를 반성하는 가운데 출판사업을 전개하였고, 제2세대의 출판인들은 서양에서 사상적인 자원을 찾으려고 하던 분위기에서 출판활동을 하였으며, 제3세대의 출판인들은 글로벌화에 의해 철저하게 서양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2, 3년 사이에, 아시아의 출판인들은 이미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시아의 출판인들은 스스로를 위하여 그리고 아시아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시아 출판인들 사이에 보다 많은 협력관계는 가능한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들은 서로 각국의 작가의 작품들을 이해하고, 읽을 수가 있을까요?
동아시아출판인이란, 아시아 출판인들 중에서도 특히 명확한 범위를 가진 구체적인 모임이며, 우리들에게는 상호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이 있고, 유사한 출판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과거의 역사 안에서 ‘독서공동체’가 존재해 왔습니다. 한•중•일 삼국은 고전적의 면에서 상호 교류하고, 서로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류사와 선생님은 제3회 서울회의에서 하나의 예를 들어 주었습니다. 중국명대말기의 과학자 송응성이 저술한 『천공개물』(야부우치 기요시의 역주로 1969년 일본의 헤이본샤에서 발행)은 각종 농업기술을 계통적으로 기재하고, 일본의 도쿠가와시대의 산업에 지극히 큰 영향을 초래하였습니다. 『천공개물』은 중국에서는 오히려 중시되지 않았고, 20세기에 들어서 일본의 도쿠가와시대의 판본이 중국으로 환류되어, 새롭게 평가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도 다른 근대의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중국의 작가 호풍(胡風)은 1936년에 『산령―조선•대만단편집』을 출간하였는데, 그것은 양규(楊逵) 등의 대만작가가 일본의 간행물에 발표한 작품 및 한국의 작가 장혁주 등의 일본어 작품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약소민족의 소설선집으로 꾸민 것입니다. 호풍의 번역을 통해 대만•한국•일본 사이에 저항정신이 상호 전달되고, 공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들은 ‘독서공동체’가 동아시아 지역에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존재하였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것들입니다.
여태까지 4회의 회의와 교류와 토론을 통해, 우리들은 ‘동아시아문고’의 구상을 실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동아시아의 출판의 장래상을 찾아서’를 테마로, 청년편집자들을 맞이하여 ‘동아시아를 주제로 하는 출판에 대한 나의 생각’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이 워크숍을 통해서 우리들은 3 세대의 출판인이 결속하여 동아시아의 출판을 위하여 무언가 성취하고, 새로운 시대의 동아시아출판에 동아시아출판인의 공동작업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본 고는 대만회의(2007년 11월 7일~9일)의 기조강연으로 발표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