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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ues

동아시아 공동 출판의 가능성과 한계
― 한일 역사 교사가 함께 쓴 《마주 보는 한일사》를 중심으로

  • 강맑실(사계절 출판사 대표)

들어가며

최근 역사서 출판 분야에서 동아시아 삼국을 중심으로 공동 출판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 교사가 함께 쓴 《조선통신사》(한길사, 2005)와 한중일 삼국의 역사학자와 교사가 함께 쓴 《미래를 여는 역사》(한겨레신문사, 2005)가 잇달아 출간된 데 이어, 올해 8월 《마주 보는 한일사》(사계절출판사, 2006)가 출간되었다.

이 책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2001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에 맞서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이 ‘한일 양국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자’는 취지로 함께 집필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의 집필을 기획하고 있다.

그렇다면 출판사는 이러한 요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까?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동아시아 공동 출판’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할 수 있을까? 우선 지난 8개월 동안 《마주 보는 한일사》를 편집, 제작하면서 얻은 구체적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자.

1. 원고 완성의 어려움

《마주 보는 한일사》는 2001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계기로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일본의 역사교육자협의회 소속 역사 교사 29명이 ‘한일공동역사교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동 집필한 결과물이다. 1200매의 초고를 집필하는 데 만 4년의 시간이 걸렸다. ‘한일 양국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자’는 취지로 기획된 만큼, 원고의 목차 구성과 내용 구성은 물론이고 용어 하나하나까지도 분명한 합의를 도출해야 했고, 민감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격한 토론이 오가기도 했다.

예컨대 ‘왜구’에 대해 한국에서는 “일본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해적”으로 보는 반면, 일본에서는 “단순 해적이 아니라, 중국인과 조선인이 뒤섞여 활동하는 상인 집단”으로 본다든지,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도 한국은 《삼국사기》를, 일본은 《일본서기》를 가장 중요한 사료로 인식하고 있었다. ‘왜구’에 대해서는 양국의 입장 차이를 칼럼으로 정리하여 상호 차이의 이해를 그대로 드러내기로 했으며, 고대사 사료에 대해서는 각기 자기 비판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양국 출판사는 2005년 12월 《마주 보는 한일사》의 출간을 결정하자마자, 편찬위원회에서 그때까지 집필한 초벌 원고를 인도받았다. 예상대로, 양국 필자들의 주제 선정과 집필 내용이 신선했다. 전문 학자들의 글은 아니지만, 오히려 학생들에게 현장에서 강의하듯이 쓴 글솜씨가 돋보였다. 하지만 편집자의 눈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일본 원고였다. 일본사의 주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독자들이 읽기엔 글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특히 일본 중세의 지배층(무사)을 다룬 부분은 일본 고대사나 일본 근세사와는 달리 한국사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사전 설명 없이 지명, 인명, 사건명 등이 무더기로 속출하여 한국 독자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아마도 일본 아오키쇼텐(靑木書店)사 편집자도 한국 원고를 읽으면서 비슷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양국 편집자의 검토 의견이 편찬위원회에 전달되자, 필자들도 무척 당혹감을 느꼈다고 한다.

원고가 완성된 시점은 2006년 2월 하순경. 양국의 출판사는 이 최종 원고를 바탕으로 편집에 착수하기로 하고, 한국어 판본과 일본어 판본의 내용이 달라지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내용을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국의 스타일에 맞게 원고를 교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교정 단계에 돌입하자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한국과 일본의 필자들이 상대국의 원고에 대해 자국의 스타일로 과도하게 윤문을 하기 시작했다. 윤문한 측에서 “내용의 줄거리를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자국 독자들이 읽기 쉽게 교정을 본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윤문을 당한(?) 측에서는 “내용을 왜곡했다”고 맞섰다. 심지어 출간이 임박하자 책의 내용에 중압감을 느낀 몇몇 필자는 아예 원고를 새로 작성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창 집중적으로 교정을 진행해야 하는 시기에 원고의 대폭 수정과 재집필이 계속되었다. 2005년에 출간된 <미래를 여는 역사>의 경우, 필름을 출력하기 바로 전날까지도 필자들이 원고에 대한 대폭 수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2. 소통의 문제

원고에 대해 필자와 편집자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기면 대화로 조율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두 나라가 공동으로 출간할 경우,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도 통역과 번역이 개입되어야 한다.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 것은 물론이고 교류 절차도 무척 복잡하다.

게다가 이 책의 경우는 29명이라는 대규모 필자군이 집필에 참여하다 보니, 그러한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원고 수정 사항이 발생하면, 보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1) 한국의 편집자 → (2) 한국 편집위원회 → (3) 번역자 → (4) 일본 편집위원회 → (5) 일본의 해당 원고 필자…. 일본 필자의 수정이 끝나면 (5)부터 (1)까지 반대 방향으로 위의 과정을 반복하여 한국의 편집자에게 결과가 통보되었다.

시간과 절차도 문제였지만, 원고의 수정 분량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최종 원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그랬지만, 편집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원고가 수정 번역되었다. 원고의 내용을 수정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수정될 때마다 모든 사항을 일일이 번역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3. 상이한 제작 현실

이번 기획은 ‘공동 출판’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출범했다. 따라서 한국어 판본과 일본어 판본을 내용상, 형태상 통일시키는 것이 대원칙이었다. 하지만 양국의 출판계 현실은 생각보다 많이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이 한 권의 출간 경험을 가지고 한국과 일본의 출판 환경 차이를 논증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여기에서는 이 책의 편집 과정에서 발생한 몇 가지 예상치 못한 문제들에 대해서만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필자들이 이 책에 사용한 자료(도판, 지도, 삽화, 표, 그래프 등)는 모두 220컷이 넘는다. 한국에서는 이처럼 비주얼 자료가 많을 경우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변형 판형을 사용하고 여건이 허락되면 4도로 인쇄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높은 제작 단가 때문에 한국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판형은 가장 일반적인 신국판으로 양측이 통일한 반면, 한국은 4도로, 일본은 단도로 인쇄하기로 했다.

도판의 저작권 문제도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 책을 출간하기에 앞서, 사계절출판사는 한국의 도판에 대해, 아오키쇼텐는 일본의 도판에 대해, 각자 양측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로 약속한 바 있었다. 이를테면 한국 김홍도의 그림의 저작권료가 30만원일 경우, 양측에서 공동으로 출간하는 것을 감안하여 60만원의 저작권료를 내고 양측의 저작권 문제를 한쪽에서 해결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애초에 한일 양측 집필진이 사용하기로 한 도판들 가운데 일부는 저작권료가 너무 비싸 사용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일본의 저작권료는 대체로 한국보다 훨씬 높았다. 결국 일부는 삭제하고, 일부는 삽화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표지가 문제였다. 한국의 디자이너가 표지 디자인을 완성하여 일본측에 보내 의견을 물었는데, 일본측은 우리가 원했던 일본 자료의 저작권료가 너무 비싸 사용할 수 없다는 답을 보내왔다. 양국의 대표적인 민중 미술인 일본의 우키요에와 한국의 민화를 표지에 함께 배치하려 했는데, 우리 쪽에서 원한 우키요에는 저작권료가 너무 높아 사용이 불가능하다하여 결국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도판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양국의 제작비 차이가 편집의 진행과 도서의 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나오며

《마주 보는 한일사》를 비롯하여 최근에 나온 세 권의 공동 출판물 모두, 또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양국 필자들이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출간을 기획하고 집필을 거의 마무리한 후에 각 출판사에 출간을 의뢰했고, 출판사는 편찬위원회의 기획과 집필 내용에 동의하여 출간을 결정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기획과 집필은 필자가, 편집과 제작은 출판사가 담당하는 이중 구조가 형성되었는데, 이것이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문제를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째, 원고가 거의 완성된 단계에서 편집자가 개입하자, 필진들이 예상치 못했던 수정 사항들이 부지기수로 발견되었고, 결국 어떤 원고의 경우 4~5년의 노력을 한 순간에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원고 집필 시작 전부터 출판사가 편집 원칙을 명확히 제시했다면 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소통의 문제다. 양국 출판사 사이에 미묘한 문제가 발생해도 양국 출판사가 직접 연락을 취하기보다는 필자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셋째, 제작의 문제도 그랬다. 양국 필진들이 오랜 시간 동안 협의하여 결정한 사항들을 대체로 받아들이다 보니, 양국의 출판 현실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공동 출판을 통해 몇 가지 가능성도 확인했다. 《마주 보는 한일사》 역시 동아시아의 정치적 이슈가 계기가 되어 기획, 출간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존의 공동 출판물과 달리 정치사뿐 아니라 사회, 경제사와 민중들의 생활사를 집중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이다. 양국의 지배층, 종교, 언어, 사상, 민중 연극과 미술을 비교 서술한 내용들은 한일 양국의 독자들이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 책에서 다룬 18개의 주제는 각기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들 수 있는 주제들이다. 더욱 풍성한 공동 출판의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이제까지는 동아시아 삼국의 뜻있는 학자와 교사들이 앞장섰다면, 지금부터는 동아시아 삼국의 출판사가 더욱 능동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출판사가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출판 프로세스를 장악해야만 애초의 기획 의도를 책이라는 상품에 제대로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편집 시스템, 제작 시스템, 유통 시스템뿐만 아니라 각 분야별 저자군의 네트워크를 구체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보고는 서울회의(2006년 10월 19일-20일)에서 보고된 것입니다.)

Profile

강맑실(Kang Marxill)

1956년 전라남도 광주 시 출생. 한국신학대학교를 졸업 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취득.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에서 출판에 대해서 수학. 한국신학연구소에서 6년간에 걸쳐 편집과 번역 일을 한 후, 사회과학 분야의 출판 활동으로 알려지는 사계절 출판사에서 8년간 편집장을 역임하고, 95년 동사의 대표(CEO)에 취임. 동사에서는 그림책 등의 아동서, 중학생 대상의 도서, 인문서를 중심으로 출판 활동을 전개. 주된 출판물에 위기철《안녕, 논리 군》(1992), 한국의 역사를 가르치는《한국 생활사 박물관》,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역사를 지도로 소개하는《애틀레스》 시리즈 등이 있다. 그외에 마틴 가드너《이야기의 패러독스》(이충호 역, 1990), 강혜원・박영신《교실 밖의 국어 여행》(1994), 노 은희・박병석《교실 밖의 지리 여행》(2005)등의 편집을 맡았다.사계절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