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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ues

문화운동으로서의 출판

  • 한철희(도서출판 돌베개 사장)
  • 취재자:

    류사와 타케시〔龍澤武〕(전 헤이본샤〔平凡社〕 대표 편집국장)

    가토 케이지〔加藤敬事〕(전 미스즈 쇼보〔みすず書房〕 대표이사 사장)

‘한국학’을 전면에 내세우며 출판활동을 하고 있는 출판사는 어떠한 역사와 이념을 갖고 있는 것인가?

‘돌베개’라는 회사명의 유래와 출판의 이념

EAPC

‘돌베개’라는 회사의 이름은 한길사, 창비사와 함께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말입니다. 예를 들면, 역사학자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의 저작 중 각주 등, 종종 돌베개에서 출판한 책이 등장하곤 합니다. 돌베개란 돌로 만든 베개란 의미라고 하는데, 이 회사명은 어떠한 유래를 지니고 있습니까?

한국현대사를 논할 때 아주 중요한 인물로서 장준하(張俊河)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박정희 정권 하에서 민주화운동을 지도하였고, 1975년 산에서 의문의 실족사(失足死)를 당하였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일제의 학도병으로서 전장에 끌려 나가게 되었지만, 경건한 크리스찬이었던 그 분은 탈주할 각오를 하였던 듯, “내 편지에 ‘돌베개’라는 문자가 들어가 있으면 그것이 마지막 편지인 줄로 알라”며 가족들과 은밀한 약조를 하고 출병하였습니다. ‘돌베개’란 구약성서에 있는 말입니다만, 크리스트교에서는 하나의 상징물로서 고난 속에서도 신앙심을 지켜 나가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계획한 대로 드디어 전장에서 탈주하여, 김구(金九)선생의 광복군에 참가하였습니다. 한편, 박정희는 당시 관동군 편에 붙어서 광복군을 진압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1945년 해방 후에 이러한 전력의 사람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는데, 장준하는 그에 저항하여 민주화운동에 온 몸을 던졌던 것입니다.

장준하는 1971년에 『돌베개』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출판하였습니다. 이듬해인 1972년 10월에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의 평화통일이라는 명목 하에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유신체제를 목표로 하는 이른바 ‘10월유신’을 단행하였습니다. 일제의 학도병으로 출정하였다가 탈주하여 광복군에 가담하게 되는 인생역정을 해방 직후가 아니라 1971년에 공표하였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그것은 과거 일제시대에 학병에서 탈출, 광복군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듯이, 이제 장기집권음모를 획책하고 있는 박정희에 반대하여 민주화운동을 계속하겠다는 메시지였으며, 그것을 10월 유신을 준비하고 있던 박 정권을 향해 날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항일운동의 연장선 위에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해 간다는 장준하의 결의표명이었던 것입니다.

돌베개사가 창립된 것은 1979년입니다. 창립자인 이해찬(李海瓚)은 현 정권 하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다른 이름으로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책을 간행한 후에 출판사 등록을 말소 당해버렸기 때문에 명칭을 바꾸어 새로운 출판사를 설립하기로 하였습니다. 당시 출판사 등록의 인가는 매우 엄격한 시대였는데, 이해찬은 바로 그 무렵에 장준하의 『돌베개』를 읽고 있었고, 새로운 출판사의 이름을 이것으로 해야겠다고 정했던 것입니다. 이렇듯이 ‘돌베개’라는 회사의 설립경위와 작명(作名)에는 한국의 현대사,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각인되어 있으며, ‘돌베개’라는 이름은 장준하 선생의 민족·민주주의적 사상과 실천을 표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EAPC

네에. 그랬군요. 매우 상징적인 회사명이군요. 돌베개사에서는 한국의 근대사나 현대사에 관한 서적을 전문적으로 출판하고 계십니까?

예전에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출판의 중심에 두었지만, 지금은 한국의 역사전반에 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른바 ‘한국학’이지요. 거기에는 물론 문학이나 철학, 사상사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탐구’, ‘한국학’이 돌베개사의 출판물의 큰 흐름이면서 동시에 주요한 방향성이 되어 있습니다.

EAPC

‘한국학’의 기치를 내걸고 출판활동을 하고 있는 출판사가 그 외에도 있습니까?

한국학 혹은 ‘국학’을 표방하고 있는 출판사는 여러 군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 회사들이 한국문학, 한국사 등과 같이 분과학문별로 구획된 전문독자를 대상으로 전문서를 출판하고 있다면, 돌베개사는 한국의 문학, 역사, 철학, 사상 등을 두루 포괄하면서 일반지식대중을 대상으로 한 인문적 출판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주장하는 ‘한국학’은 한국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지금 ‘국학’이라고 불리는 영역과 동일합니다만, 그 시각과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들은, 한국학이란 ‘한국적 인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보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한국을 파악하고 해석한다는 자세입니다. 물론 해외로부터 들어 오는 이론이나 성과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도입하여, 어떻게 하면 새로운 방식으로 한국을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EAPC

일본에도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 출판사가 있습니다만,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편집자와 저자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 나가면 좋을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편집자와 저자와의 사이에 이론적이라고 할까, 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상적인 핵을 공유하지 않고서는 한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자세로 책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편집자가 저자에게 그러한 사상과 자세를 제기하고, 그것들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저자는 각자 모두가 전문분야를 지닌 전문가이니까요. 그러한 의미에서 전문적 학술서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쉽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요.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편집자와 저자가 사상을 공유하고 이를 한 권의 책으로 구현해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여기에는 편집자와 저자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돌베개사는 나름의 역사를 통해서 그러한 관계와 경험을 축적해 왔습니다. 1979년 창립 때부터 현재까지, 돌베개사에는 큰 전환기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엽의 일입니다. 그 때까지의 돌베개사는 출판사라고 부르기에는 좀 곤란한 체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도서의 출판사로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우리들은 출판이라는 행위를 문화활동이 아니라 정치활동으로 자리매김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출판사라는 자기인식이 거의 없었습니다(웃음). 하지만 1987년의 민주화선언을 통해 군사독재체제가 점차 해체되고, 사회 전체가 민주화의 방향으로 이행하고 있던 1990년대 초두가 되자 우리들도 출판사라는 자기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출판기획의 방향도 변혁을 위한 정치적 운동의 차원에서 문화적 차원의 운동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의 한국의 출판계는 돌베개사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도서의 간행이 성행하였습니다. 사회과학출판의 전성시대라 할 만큼 사회과학도서가 넘쳐났던 시대였습니다. 한국사회의 정치적 변혁과 이를 위한 전제로서 비판적 현실인식이 시대적 요청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1990년대가 되어 사회정세가 변하게 되자, 사회과학도서가 점차 퇴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과학 출판사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변신하였는데, 돌베개사는 ‘한국적 인문학’이라는 방향성을 정립시켜 왔던 것입니다.

제가 돌베개사에 입사한 것은 1983년입니다만, 공모를 통해 입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무렵 아는 선배가 번역 일거리를 주어 출판사를 들락거리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돌베개사였습니다. 그 선배는 당시 돌베개사의 편집장이었습니다. 그 선배가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하여 돌베개사에서 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1986년에 사직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많은 열혈정치청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출판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웃음). 그래서 노동운동단체에서 일하거나 공장에 들어가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3년 후인 1989년에 다시 돌베개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저는 주간(편집장)으로서 복귀하였는데, 회사는 아직 공동운영의 형태였습니다. 그 후 함께 했던 분들이 각각의 길로(정치 혹은 다른 사업 등등) 분화해 나가면서 저는 1993년에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한국적 인문학’의 노선을 모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돌베개사가 그러한 노선을 취하기 시작한 것은 제가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국문학이 문학이 아니라 인문학의 범주에 편성되어 있어서 당시의 저는 인문학 특히 한국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대학시절부터 쌓아왔던 연구자들의 네트워크도 있고 해서,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더욱 강해졌던 것입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자국(自國)을 상대화하고 비판적으로 인식할 것인가?

EAPC

돌베개사의 방향성, 한 사장님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일본에도 일본문학이나 일본사, 혹은 문화사나 정신사 등 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당연히 존재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오랜 학문연구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일본사∙일본문학∙일본문화사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연구를 어떻게 하면 비판적으로 상대화할 것인가라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류사와) 자신도 바로 그 부분에 큰 비중을 두고 편집을 해 왔습니다. 상당한 기간 동안 저보다 젊은 편집자들과, 여러 가지 연구회나 공부모임을 조직하였고, 책의 형식도 단행본은 물로 총서나 사전 등 형태를 바꿔가면서 하였습니다. 저로서는 매우 철저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돌베개사에 비하면 제가 헤이본샤에서 행하고자 하였던 것은 충분히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지닌 지적인 환경이 각각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 근대출판만 하더라도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웬만한 서양 서적들은 번역·소개되었고, 스스로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고, 해석해 온 축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축적을 토대로 가지고 있기에 자기를 상대화하려는 여유를 가질 수 잇는 것이지요. 위로 새삼 상대화할 계기가 찾아오게 되지요.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근대출판의 역사가 짧고, 식민지지배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도 전쟁의 참화에 휩쓸리게 되면서, 자기정리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일본과 같은 그러한 축적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시도하고 있는 자기정리는 오랜 축적을 전제로 한 상대화가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불모지대에서 스스로를 정리해 가면서 스스로에 대해 비판적으로 인식한다는 이중의 작업입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사막과 같은 환경에 놓여져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상황은 아주 부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APC

한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험난함과 곤란은, 일본에는 분명히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예를 들면 수 세대에 걸친 서양연구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들의 영향을 받은 일본연구에도 수 세대에 걸친 축적이 있습니다. 나아가 아시아 연구에 관해서도 특히 동양학이 전형적입니다만, 상당한 축적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포함하여 상대화한다는 것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즉 너무나 축적이 많기 때문에, 비판적인 관점을 찾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일본의 학문은 왕왕, 서양연구는 서양에, 일본연구는 일본에 대하여 무의식적이고 매개물 없이 가치를 두게 되어 버리기 때문에 상대화하는 것이 우선 어렵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비판적인 방법을 찾아낼 것인가,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편집자로서 생각해 왔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돌베개사는 편집자와 저자와는 이른바 동지적인 관계에 있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부러운 것이지만, 출판사 혹은 편집자와 저자의 관계는 그것만이 아니지요. 출판사, 혹은 편집자는 저자와는 역할이 다르고, 어떤 의미에서는 저자에 대해서도 비판적·비평적인 존재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동감입니다. 저자와 편집자가 사상을 공유하고 동지적인 관계에 있더라도 책을만드는 작업과정에서 저자와 편집자는 비판적 긴장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편집자는 저자를 존중하면서도 독자의 입장에 서서 더 나은 책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면서 저자와 잘 소통하여 보다 나은 책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편집자의 필수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편집자와 출판사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요. 돌베개사는 저자와 독자에 대한 신뢰구축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돌베개사는 1990년대 초에 전환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그 때 이래 출판물의 내용은 다소 변하였습니다만, 창립 당초의 출판의 방향성과 이념은 지금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자와의 기본적인 관계도 독자와의 관계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종래의 독자들이 돌베개사에 보내주는 신뢰는 거의 흔들리지 않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규모도 작고,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닙니다만, 돌베개사가 독자적인 출판활동을 계속하며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신뢰를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EAPC

과거 일본에서도 인문서의 출판사에는 그러한 독자와의 강한 연대가 있었습니다.예를 들면 서구서적의 번역출판이 중심이었던 미스즈 쇼보도 그 하나입니다. 미스즈 쇼보의 번역출판 목록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독자가 존재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1990년대 초엽부터 일본의 인문서출판사는 그 때까지 유지해 왔던 독자와의 그러한 관계는 해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가치가 있는 내용을 지닌 책을 정성스럽게 만들기 보다는 디자인만이 화려해지고, 그에 걸맞은 내용을 갖추지 못한 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책을 만드는 데에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각각의 내용에 맞는 구성, 편집이 필요한 것입니다. 즉 엄정한 편집정신이 중요한 것인데, 그것이 지금 매우 빈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현상 가운데에서 돌베개사는 제대로 된 책을 만들고자 하는 이념을 지켜 왔던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우리회사는 저자나 독자의 신뢰감을 지켜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출판의 전문성을 공동으로 생각한다는 것

EAPC

동아시아출판인회의의 웹사이트에는 회의의 구성원이 각자의 지역에서 출간된 책을 추천하는 「Recommended Books」라는 코너가 있습니다만, 거기에 돌베개사의 『조선왕실기록의 꽃 의궤』와『강의 나의 동양고전독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지금 돌베개사에는 저 외에도 14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편집자는 6명입니다. 우리 회사가 지금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한국문화사」라는 시리즈입니다. 제 1권은 『순백으로 빚어 낸 조선의 마음, 백자』, 제2권은 『조선 왕조의 의례와 생활, 궁중 문화』, 제3권은 『실학 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 화성』, 제4권은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사의 빛, 무령왕릉』그리고 제5권은『조선 왕실 기록의 꽃 의궤』입니다. ‘의궤’란 ‘의식의 궤범이 되는 서적’이라는 의미인데, 조선 시대의 국가∙왕실에서 거행된 주요 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 형식의 서적입니다. 이 시리즈를 만들어 나가는 데 가장 힘든 것은 저자들이 편집자의 의도에 맞게 원고를 써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전문 분야에 관한 논문을 쓸 수 있지만, 일반 독자들을 위한 문장을 쓰는 것에는 그다지 익숙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저자와 몇 번이고 글을 주고 받아야만 겨우 희망하는 원고가 완성됩니다.

시리즈 「한국문화사」제1~5권(2002년~2005년)

EAPC

한글은 읽을 수 없지만, 디자인도 품격이 있고, 얼핏 보아도 아주 정성스럽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도 돌베개사의 ‘한국학’ 노선의 하나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 돌베개사에 입사하여 3년 정도 일했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출판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라는 외도를 그만두고 1989년에 다시 돌베개사에 복귀한 이후에는 출판 전문가로서 일생을 바치고자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식의 사회과학출판운동은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렵부터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마켓팅분야도 포함하여 출판 전반에 관한 월 1회의 공부모임을 시작하여 15년째 계속하고 있습니다. 40대를 중심으로 구성원은 모두 30명 정도인데, 지호출판사 대표인 장인용씨, 동아시아출판사 대표인 한성봉씨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참여구성원들은 각각의 개성적인 출판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대한출판문화협회나 한국출판인회의 등의 출판단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분들로서, 책을 어떻게 만들어 어떻게 팔 것인가라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의 출판문화를 만들어 가는 움직임의 중핵이 되고 있습니다.

EAPC

한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출판이나 서적이라는 것의 전문성을 편집자나 출판인이 공동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들, 이 동아시아출판인회의의 발기자 3명(가토 케이지, 오츠카 노부카즈, 류사와 타케시)은 현역시대에 하고자 하였으나 해내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좋든 나쁘든 오랜 출판의 역사가 있습니다. 지금 편집자들의 세계가 현저하게 정체되어 있는 원인의 하나는, 결과이기는 하지만 역사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바꾸어 나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은 출판이나 편집의 전문성에 대한 자기인식이 지극히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출판사는 분명히 축적은 얕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축적은 있어도 자기인식이 없습니다. 오히려 망각하고 있습니다. 축적이 얕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반드시 그것을 뛰어넘고자 하는 움직임을 낳습니다. 그러나 망각에서 오는 폐쇄상황은 여간 해서는 타파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동아시아의 출판계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출판상황은 일본에 비해 뛰어나지도 않고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공동으로 출판계 전체를 생각하면서 출판활동을 해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세대의 전략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출판단지의 건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출판계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그것은 소규모의 회사에서는 사장이 편집도 영업도 모두 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개개의 출판사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면 공동의 활동도 불가능해지므로, 그러한 문제 때문에 갈등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자원적인 조직을 제도화하고자 국가로부터 예산을 얻어 내어 출판진흥위원회와 같은 조직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의 한계를 넘어 한국의 출판문화를 주도할 수 있는 공적인 조직을 만들어, 출판 전문가들을 불러 모으고, 출판제도나 정책의 입안 등도 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조직을 만들 필요성에 대해서 정부에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 활동에 가장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006년 8월 23일 한국 파주시 돌베개사에서)

Profile

韓喆熙(Han Chul-Hee)

1957년 출생.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83년 돌배개사 입사. 86년에 퇴사하여, 3년 정도 노동운동에 관여한다. 89년에 주간(편집장)으로서 재차 돌배개에 입사하여, 93년부터 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의 출판 관계자로 조직되는「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대표 간사(1994〜98년)등을 역임. 현재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 파주출판문화정보 산업단지 사업협동조합 실행 이사, 한국출판인회의 간사. 돌배개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인문서의 출판사 중 하나로서, 답사 여행도 안내 시리즈, 역사인물 평전, 한국 고전 시리즈 등, 한국의 역사나 문화에 관한 서적을 중심으로, 아동서 출판에도 관련하고 있다.돌배개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