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ect a language: Chinese Korean Japanese English 

Dialogues

현대사회에 있어서 인문서의 출판에 관하여

  • 고세현(창비사 사장)
  • 류사와 타케시〔龍澤武〕(전 헤이본샤〔平凡社〕 대표 편집국장)

시장원리가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두 나라의 출판계에서, 다양성 있는 인문서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출판할 것인가. 인문정신의 쇠퇴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두 사람의 편집자가 출판의 현상과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주화 운동을 지탱해 준 출판사

류사와

창비사는 백낙청 선생님의 명성 하에 한국의 지식인들이 출범시킨 출판사로서, 일본에도 잘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일본에서는 지식인이 창업한 출판사는 찾아 보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운영되어 왔는지 매우 흥미가 깊습니다. 그래서 사장직을 맡고 계신 고 사장님께 구체적으로 어떻게 출판활동을 하고 계신가를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창비는 2006년에 창업 40주년을 맞이합니다만, 아시다시피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의 거점으로서 독재정권 하에서는 민주화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40년의 역사가 흘러 오는 가운데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창비는 1970년대 초반부터 단행본의 출판을 시작하였습니다만, 당시 편집위원은 3, 4 명 뿐이어서 편집에서 교정까지 무엇이든지 자신들이 하였습니다. 회사라고 하기 보다는 동아리 같은 분위기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후 조금씩 규모가 커지고, 사원을 고용하게 되면서 출판물의 숫자도 늘어갔습니다. 그 사이에 대부분의 편집위원이 민주화운동으로 직장에서 쫓겨나 버렸던 시기도 있었습니다만, 민주화운동이 성공하게 되자 그들은 다시 직장인 대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하여 서서히 사원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류사와

지금도 지식인들로 구성된 편집위원회에서 제시된 기획을 중심으로 출판하고 계신지요?

현재는, 단행본의 편집은 저를 중심으로 사원들로 구성된 편집부가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편집위원들께는 의견을 여쭤 보는 정도입니다. 한편, 잡지의 편집은 6명의 상임편집위원을 중심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1981년에 입사하였는데, 사원 그룹의 제1세대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류사와

그렇다면 40년의 역사 가운데 전반은 편집위원 중심, 후반은 편집부 중심의 체제이겠군요. 그러나 지식인들의 기획으로 회사가 성립한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좀 생각하기 힘듭니다. 물론 일본에서도 지식인들과 협력하지 않으면 인문서의 출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출판사의 경영이라는 점에서는 지식인의 역할과 출판사의 역할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닐까요?

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창비는 한국의 출판사 중에서도 예외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겠지요. 거기에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우선 편집위원들은 직장에서 쫓겨나 할 일이 없었습니다(웃음). 그래서 그 일에 정력을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불어 그들은 운영자금을 끌어 모으는 노력도 하였습니다.

류사와

네에. 그랬군요. 회사의 성립이 한국의 역사적인 배경, 한국의 지식인이 놓인 상황과 아주 깊게 관련이 있었던 것이군요.

창비가 여기까지 버텨 올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민주화운동이 성공하였던 덕분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창비의 출판물 중에 아이들의 필독도서라고 여겨지고 있는 『몽실언니』(권정생, 1984년 초판)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태까지 50만 부 정도 팔려 나간 롱셀러입니다. 1980년대에는 학교의 교사가 아이들에게 『몽실언니』를 추천하면, 너는 빨갱이야 하고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강한 압력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아이들의 필독도서가 되어 있고, 창비의 매상을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웃음). 따라서 민주화운동의 성공에 의해 창비도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류사와

민주화운동은 우선 성공을 하였고, 민주화된 사회가 실현되면서, 출판 세계에 다음 단계로 등장하는 것이 상업화입니다. 즉 ‘잘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는 책’이라는 척도로 책을 평가하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실로 난제이면서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민주화 이후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한국사회 그 자체가 지금 모색하고 있는 중이지요. 우리들이 생각하는 민주화란 민주화운동의 성공이 최종목표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는 남북통일이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에도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품화·상업화라는 문제에 대해서 창비의 경우, 지식인그룹으로서의 품격, 진지한 이념과 방향성을 지속적으로 지켜나가고자 하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창비에는 주로 인문, 문학, 아동용 도서 분야의 출판물이 있습니다. 인문서는 종래의 노선을 지켜나가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예서는 진보적인 작품의 출판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보다 부드럽게 독자층을 확대시키기 위한 방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아동용 도서는, 타사와의 경계선이 없어지고 있는 분야인데, 창비다운 질 높은 책을 출판해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몽실언니』와 같은 진보적 성향의 책뿐만 아니라, 보다 대중적인 책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인문서로는 이익을 올릴 수 없으므로, 인문서로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더욱 노력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학의 대중화와 인문정신의 쇠퇴

류사와

저도 인문서의 출판에 오랫동안 종사해 왔습니다만, 분명히 인문서로는 돈을 벌 수가 없으며, 비록 몇 권의 책이 잘 팔렸다 하더라도 인문서 전체가 막대한 이익을 가져올 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러한 책을 계속해서 출판할까? 저는 역시 인문서는 ‘독서’ 즉 ‘책을 읽고 생각한다’라는 행위의 핵에 위치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것의 근저에는 인간과 관계된 모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정신이 있습니다. 그것을 인문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인문서가 붕괴해 버리면 ‘독서’ 그 자체가 붕괴해 버립니다. 나아가서는 출판이라는 행위 그 자체가 붕괴되어 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인문서의 출판은 매우 어렵고, 더욱이 일단 붕괴되기 시작하면 그 붕괴를 막는 것이 매우 곤란해집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창비의 기본적인 이념도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보다 좋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떠한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향성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창비의 인문서로서 사회과학분야에서는 노동문제나 여성문제 혹은 환경문제를 다룬 서적이 중심이 되어 있지만, 그러나 지금은 인문정신이나 교양을 지닌 독자가 점점 적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독자를 조금이나마 늘려 가기 위하여 이 장소(세교연구소 건물)를 ‘창비문화센터’로 바꾸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입니다.

류사와

그 계획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이 건물은 창비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지금은 1, 2층은 임대를 주어 다른 회사가 들어와 있습니다만, 장래에 1층은 카페나 시 낭송회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2층은 일반독자를 위한 강연회장으로, 지금 회의실이 되어 있는 3층은 소규모의 세미나하우스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창비는 ‘지식인의 네트워크’의 구축을 목표로 삼아 왔으므로, 이 ‘문화센터’를 지식인의 토론의 장, 혹은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습니다.

이 구상이 실현된다면, 교양있는 사람이나 종래의 창비 독자뿐만이 아니라, 흥미본위로 오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도 와보니까 재미있다든가 즐겁다든가 하는 느낌들을 가질 수 있도록 활동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새롭게 창비의 독자가 된다면, 결과적으로 매상고와도 결부될 것이고, 독자와의 만남의 장, 독자의 의견을 듣는 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류사와

그 생각은 매우 흥미로운 구상이군요. 일본에서도 결코 활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독자(시민)들에게 출판사가 연속세미나나 강연회를 개최한 예는 있었습니다. 가토 케이지씨의 ‘미스즈쇼보’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저도 청강하였습니다만, 그것을 이어가는 형태로 저 자신이 기획하여 ‘헤이본샤’를 설득하여, 후지타 쇼조 선생, 사이고 노부즈나 선생, 아미노 요시히코 선생 등과 고전 세미나를 2년 정도 하였습니다. 1970년대 전반 젊은 편집자였던 시절의 일입니다. 아까 한국의 지식인이 민주화운동 과정 중에 대학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 일본에서도 1960년대말에 젊은이들이 기존의 대학제도에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제도적이 되어 버린 대학에 대하여, 대학의 존재방식, 학문의 존재방식에 큰 의문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저희들이 고전세미나를 하려고 한 것은 그러한 상황이 있은 직후였습니다. 고전을 제대로 새로 읽어냄으로써 인문정신을 다시 한 번 현대 안에서 생각해 보자고 하는 시도였습니다. 소박한 시도여서 대성공하였다고는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한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90년대 이후, 대학이 대중화하고 인문정신이나 교양의 개념이 변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책이야기가 아니라, 저 영화는 봤니? 라고 하는 이야기뿐입니다. 이러한 위기적인 경향은 아마도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는 현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류사와

일본에서는 보다 더 이른 시기부터, 게다가 철저하게 그렇게 되었답니다.

인문정신이나 교양을 지닌 사람들의 감소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완전히 사라질 리는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감소의 속도를 가능한 한 느슨하게 하기 위하여 출판사는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노력이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노력은 아닙니다. 돈을 벌고 싶다면, 반드시 출판사를 창립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출판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출판은 산업이므로 이익을 내야만 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출판산업에 나타난 이러한 경향은 인문정신과 교양을 지닌 시민이나 독자를 점점 줄게 하는 것은 아닌지, 저는 아주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평기능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류사와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출판사는 모두 규모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1960년대의 고도경제성장이 그려 낸 곡선을 따라 인원규모도 급료수준도 모두 올리기만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이익추구가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졌는가 하면, 역시 대량부수의 출판을 지향하였습니다. 기획이 점점 획일화되어 갔습니다. 각 출판사들은 대부분 비슷한 책을 출판하는 상황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인문서의 출판이란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성립되지 않는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규모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규모가 작더라도 다양성이 확보되면 됩니다. 그러나 획일화의 흐름 안에서는 다양성이 점차 상실되어 갑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책에는 ‘신서’라는 형태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히 우수한 미디어로, 저는 신서도 인문서의 한 존재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어중간한 학술서보다도 훨씬 더 우수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각 출판사가 비슷한 신서를 내고 있어서 각각의 특색이 사라지고, 획일화 현상이 무서운 기세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확대화된 출판사는 그 규모를 유지하여야만 하기 때문에, 매상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정의 판매부수를 기대할 수 있는 신선에 진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틈엔가 제가 근무했던 헤이본샤도 신서를 내게 되었습니다만……(웃음)

하지만 신서를 인문서로 낸다는 것은 일정의 수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독자는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만.

류사와

현재의 신서의 경쟁이 그와 같이 작동하고 있는 지는 의문입니다. 팔리는 저자에게 기대어 내용이 엷어지고, 더욱이 독자를 얻기 위하여 내용이 자극적으로 변해 갑니다. 한편으로는 신서가 자신의 최초의 책이라는 필자도 늘어갑니다. 과거에 신서가 인문서로서 뛰어났던 것은 이미 저작이 몇 권인가 있고, 학문적인 업적이 있는 사람이 비전문가를 위해 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필자에게 있어서 큰 도전이며, 우수한 신서는 롱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학문적인 축적이 전혀 없는 사람이 갑자기 신서를 내게 됩니다. 요컨대 필자 측이 과거의 신서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으로, 새로운 것으로 하는 방향이 오히려 바닥이 얕고 금방 진부해지는 획일적인 것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방향으로 흘러 갑니다.

네, 정말 놀랄만한 상황입니다. 한국에서도 10년 정도 전부터 대중적인 인문서라는 명목으로 아마추어 학자들도 책을 많이 내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학문적 축적이 별로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창비에도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원고가 송부되어 옵니다만, 대부분 정중히 거절합니다. 그런 까닭에 창비는 문턱이 높다라든가 대학교수가 아니면 책을 내주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만, 그런 게 아니라 대중적인 서적을 내더라도 나름대로의 학술적인 축적이 필요한 것이지요.

예를 들면, 창비에서 출판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전3권(유홍준 저, 제1권 초판 1993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문화재청장을 지내고 있는 사람이 대학교수 시절에 출판한 책입니다만, 이 책은 200만부 팔렸습니다. 대중적인 서적이라고는 하지만 거기에는 20년 가까운 축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였습니다. 인문서나 학술서는 분명 일반서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고 저도 생각하지만, 그러나 양자가 연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저자의 축적이 농축되어 대중적인 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류사와

그것은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태까지는 없었던 표현을 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지식을 전해주는 신서나, 풍부한 축적을 환원하는 미디어로서의 신서라면 의미도 있고, 그 수요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일본의 신서를 보면 거친 소금 맛이 나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옥석을 구별하는 작업입니다. 출판사의 비평기능을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 사회의 비평기능이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라는 문제입니다. 옥석을 구별하는 비평가로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신문기자인데, 그들은 이 책도 좋고, 저 책도 좋다는 애매한 비평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그것을 읽고 믿어버리는 독자는 이것 저것 사버리게 됩니다. 축적이 있는 필자의 책은 어렵고 팔리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 저자나 편집자의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조차 있지요. 따라서 출판사는 쉽게 낼 수 있는 책의 유혹에 복종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비평의 기능입니다.

류사와

네 맞습니다. 문턱은 확실히 높여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비록 권위주의라는 말을 듣더라도, 그것이 비평기능이라는 것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능이 지금 한국에서 건전하게 작동하고 있느냐 하면, 매우 의심스런 상황입니다. 게다가 한국의 출판계에서는 무엇이 성공한 것이고 무엇이 실패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매우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즉, 출판부문에서 상업주의적인 생각이 매우 만연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창비보다 수십년이나 젊은 신흥출판사가 큰 이익을 내게 되면, 그들은 우리들을 보고 “너희들은 아직까지도 팔리지 않는 책을 만들고 있냐?”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창비와 같은 이념을 가지고 출판을 해 온 출판사 중에는 경영에 실패하여 축소를 한다든지 도산한다든지 하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창비의 이념과 활동을 보고 자신들로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등등의 평가를 해 줍니다. 이와 같이, 성공과 실패의 척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사내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젊은 사원들은 팔릴 것 같은 책을 내고 싶다고 합니다. 그 말의 이면에는 책을 많이 내서 많이 팔고, 월급도 올려 받고 싶다는마음도 있겠지요. 그에 대해 저를 포함한 중견사원들은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좋은 책인지 아닌지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러면 바깥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심으로는 반발하는 사람도 있는 듯 합니다.

류사와

마치 제 얘기를 하는 듯 합니다(웃음). 그 점 때문에 저도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내부인식의 차이가 훨씬 더 심각한 것인 경우도 있는데, 저의 경우, 편집부의 책임자로서, 반발이 일어나면 철저하게 무시하든지 탄압을 해 버렸습니다(웃음).

편집자에 입장에서 얘기한다면, 물론 좋은 책을 만듦과 동시에 그 책은 팔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좋은 책은 널리 보급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좋은 책이니까 인문서니까 하는 등의 이유로 팔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원리와는 별도로 책에 대한 평가척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장주의상황과 편집자의 역할

인문서나 학술서는 시장원리에 맡겨두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출판사가 많은 궁리를 하여야 합니다. 그에 대해 저는 세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 공공도서관 등의 공적 기관이 구입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면이 가장 뒤떨어져 있습니다. 둘째는, 인문서의 편집자는 독자성을 가지고 독자가 책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한 늘려 나가고, 독자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인문서 뿐만 아니라, 사업을 다각화함으로써 다양성을 가지고 함으로써 경영을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인문서만이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실제로 창비는 문예출판으로 시작하였고, 지금은 아동서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본이념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인문서를 지속적으로 출판하기 위해서라도 사업의 다각화, 출판의 다양화에 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점에 대해서 일본의 인문서 출판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류사와

제가 근무했던 헤이본샤에서는 인문서 뿐 아니라 사전, 잡지, 사진집, 문예서 등도 출판하였습니다. 그 때 중시하였던 것은, 어떤 장르의 출판물이든 그 출판물의 질(quality)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내에서 그 질에 대한 감각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1980년대, 90년대에 들어 편집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변화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본에서의 문예서는 창비사가 출판하고 있는 문예서와 비교해 볼 때 대중적인 마켓을 상정하여 출판되고 있는 것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경향은 아동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질을 유지하는 것은 지극히 곤란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이하게 다각화를 도모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목을 죄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창비가 시나 소설 등의 문예출판으로 시작하였을 때, 이 사회에서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존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역사서도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즉 이러한 사회가 된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그 근본을 역사에서 찾아보고자 한 것으로서, 근현대사에 관한 서적을 출판하여 왔던 것입니다. 1970년대부터는 아동서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만, 그것은 독창적인 아동서 단행본으로서는 한국에서 최초의 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창비는 기본이념을 중시한 출판활동의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다각화가 도모되어 왔다고 할 수 있겠지요. 80년대에는 사회과학분야의 전문출판사도 한국에 많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에는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어 버렸거나, 당초의 이념과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게 된다든지 하는 출판사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창비는 경영적인 면에서는 힘든 분야를 다른 분야가 지원해 줌으로써 기본이념을 바꾸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류사와

인문서의 편집자는 “이것은 좋은 책이니까”라는 식으로 책이 팔리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을 한다든지, 권위를 방패로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보기 좋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사회를 향해 책을 내고 있는 것이므로, 자신들이 만든 책이 사회나 문화 안에서 어떠한 위치,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를 분명히 파악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부분을 명료하게 하지 않으면 독자에게는 아무 것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편집자의 역할에 대한 사고방식도 다양화하고, 공통인식을 가지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란 즉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편집자는 낚시를 하는 감각으로 팔릴 책을 내고 싶다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팔리지 않아도 좋으니까 질이 양질의 책을 내는 것만을 고집한다면, 독자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편집자는 저자와 독자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류사와

올바른 말씀입니다. 편집자는 그것을 자각하여야만 하고, 저자와 독자 사이에 서야만 할 뿐 아니라 자신이 세운 기획의 콜로라리(연속성·계열)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생각하여야만 합니다. 그것을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만이 아니라 사내에서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사내뿐만 아니라 회사의 울타리를 넘어 횡단적으로 공유하는 것, 그것이 매우 필요한 것이고, 지금 편집자들에게 던져진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출판계가 시장주의화로 전환되고 있는 현상 가운데에서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각각의 출판사, 혹은 편집자는 분명한 방향성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비록 탄압이나 다른 억압적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말입니다(웃음). 그것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2005년 11월 23일 한국·서울의 세교(細橋)연구소 회의실에서 )

Profiles

고세현(高世鉉, Ko Se-hyun)

1955년 전라북도 군산 시 출생. 80년, 서울대학교 한국사학과 졸업. 79년부터 81년에 걸쳐서 한국 민주화운동에 관련하여 두번에 걸쳐 투옥되었다. 81년, 편집자로서 당시 창작과 비평사에 입사, 후에 편집국장을 맡았다. 99년, 창비사 사장에 취임. 당사에서는 잡지《창작과 비평》 외에 강만길《한국 근대사》(1984), 동《한국 현대사》(1984), 유홍준《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1993), 강만길・성대경《한국 사회주의 운동 인명 사전》(1996)등의 편집을 맡았다. 또한 92년에 이와나미 쇼텐에서 간행된 와다 하루키의《역사로서의 사회주의》의 한국어 번역을 담당했다(창비사, 1994). 주요 논설에 <통일 운동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하여>(《창작과 비평》1992년 가을호)등이 있다. 현재 대한출판문화협회 및 한국출판인회의의 이사를 맡고 있다.

류사와 타케시(龍澤武, Ryusawa Takeshi)

1945년 동경 출생.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대학 경제학부 졸업. 68년 헤이본샤 입사. 헤이본샤선서(選書)편집장, 대표 사전 서적 부장, 대표 편집국장을 역임하고, 96년에 히타치(日立) 디지털 헤이본샤 대표로 취임. 2000년, 당사 해산과 동시에 헤이본샤 퇴사. 헤이본샤에서는 카토 슈이치(加藤周一) 편집장의 지도하에 내부 편집장으로서《세계 대백과 사전》(전 35관)을 완성(1988)시킴과 동시에 사이고 노부츠나(西郷信綱)《코지키(古事記)주석》(전 4관), 후지타 쇼조(藤田省三)《정신사적 고찰》,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무연(無縁)・공계(公界)・락(楽)》 등 일본의 정신사, 역사학을 혁신시키는 저작의 기획 편집에 종사. 동양문고(東洋文庫)・헤이본샤 라이브러리 등의 기획을 발휘하는 한편, E. 사이드《오리엔털리즘》, F. 제임슨《정치적 무의식》 등 영미 이론서의 번역 출판을 추진. 90년대 후반에는 세계 대백과 사전의 데이터베이스화, 디지털화에 주력했다. 헤이본샤의 퇴사 후에는《계간・책과 컴퓨터》의 편집 위원으로, 또한 인문서 6사 연합에 의한 온디맨드 총서《리퀘스터》를 제창하여 간행. 현재 주식회사 트랜스아트 고문, 토요타 재단 이사, 호세이(法政)대학 강사.